만약 스플리트에 일주일이나 그 이상 머문다면 여러 당일치기 여행코스에 도전해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이들이 트로기르, 시베니크 크르카 국립공원, 그리고 브라츠 섬과 흐바르 섬을 언급합니다. 하지만 고대 로마시대의 고고학적 장소에 관심이 있다면 솔린(살로나)이 여행지로 제격이죠. 재건된 과거 로마시대 도시의 모습을 특징으로 하는 살로나는 역사에 관심 있는 여행자들에게는 단연 최고로 인기 있는 곳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길, 스플리트에 있어서 살로나는 마치 나폴리에 있어서 폼페이가 가지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하죠.
솔린으로 가는 교통편
오늘날의 솔린은 스플리트에서 북쪽으로 10킬로미터 떨어진 자드로 강을 따라 위치해 있습니다. 솔린은 차로 쉽게 갈 수 있고 프로멧 스플리트에서 운영하는 현지 버스노선 5번으로도 갈 수 있습니다.
솔린에서 해볼 만한 것
솔린에 도착하면 그곳만의 매력과 친근함을 금방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도시 한 가운데에는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푸른 잔디가 넓게 펼쳐져 있죠. 어린이 친화적인 분위기 덕분에 솔린은 젊은 가족들에게 인기 있는 도시로, 많은 이들이 솔린에 정착하고 있습니다.
도심에는 카페가 여럿 있어서 선호하는 음료나 아이스크림을 즐길 수 있습니다. 솔린 섬의 성모 성당이라는 솔린의 중심교구도 있습니다. 도시의 분위기는 매우 즐겁고 살기 좋은 도시라는 인상을 줍니다.
솔린의 중심부를 통과하는 자드로 강이 흐르는 소리는 도시의 분위기에 품격을 더해 줍니다. 자드로 강은 스플리트와 주변 지역의 식수 공급원입니다.
솔린에서 북쪽 방향으로 몇 분 걸어가다 보면, 가스피나 믈리니차라고 불리는 예전의 제분소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18세기의 건축적인 성과입니다. 20세기에 제분소가 문을 닫을 때까지 곡식이 이곳에서 처리되었습니다. 오늘날엔 이곳이 멋진 여행지로 변모했습니다.
계속 걷다보면 오늘날 성스러운 교회라고 불리는 성 모세와 성 피터 교회의 이전 유물을 보게 됩니다. 11세기에 세워진 이 곳은 크로아티아 왕 즈보니미르의 대관식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솔린이 즈보니미르의 도시라고도 불립니다.
살로나
위에서 언급했던 살로나라는 야외 박물관은 솔린 도심으로부터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도보나 차로 갈 수 있는 곳이죠. 도보로 간다면 푸트 살로네라는 길로 따라가면 됩니다. 그에 더해, 인근을 더 편하게 둘러보고자 한다면 슬리퍼보다는 운동화를 신는 것이 좋겠죠.
살로나를 방문하기 위한 성인 한 명당 입장료는 7유로 정도입니다.
살로나에 도착하면 그곳이 웅장하며 창의적인 곳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많은 고고학적 전시물들이 당시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흥미를 끄는 첫 번째 장소는 살로나의 초기 크리스트교 성지입니다. 구도심에는 두 개의 바실리카, 주교 관저, 그리고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위해 모이던 두 개의 소예배당이 있습니다. 당시엔 이곳이 비밀 장소였는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기 때문입니다.
몇 미터 내려가면 과거 로마의 대중목욕탕의 유적이 있습니다. 목욕탕 내부에 있는 모든 방들은 재건되어 있습니다. 물을 데울 때에는 전통 방식대로 불을 사용했습니다.
살로나의 북쪽 벽면에는 살로나의 초기 그리스도교 성지의 유적이 있습니다. 이곳은 가장 유명했던 살로나의 주교 성 두잠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의 석관은 몇 세기 후에 스플리트의 성당으로 이관되었습니다.
바로 인근에는 투스쿨룸이라고 하는 건물이 있는데, 솔린 여름 문화행사의 장소로 쓰이는 작은 박물관 겸 안뜰입니다.
푸트 살로네 거리를 계속 걸어가다보면 두 개의 장소가 더 나타납니다. 첫 번째는 4세기에 지어진 살로네에서 가장 오래된 바실리카의 유적입니다. 이곳은 크리스트교인들에 대한 박해 기간인 304년에 죽임을 당한 순교자인 아스테리우스, 안티오키아누스, 가이아누스, 폴리니아누스, 텔리우스의 무덤 위에 건축되었습니다.
마지막은 로마식 원형경기장으로, 살로네 전체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소일 겁니다. 이곳은 2세기에 건축되었으며 검투사 간의 싸움이나 검투사와 맹수들 간의 싸움을 위한 곳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객석은 1만 7천명을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성 두잠을 비롯한 많은 살로나의 순교자들은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통치 기간 동안 원형경기장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17세기에는 당시 솔린과 달마티아를 통치했던 베네치아인들이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여 전략상의 이유와 방어를 목적으로 원형경기장을 격하시켰습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과거 원형경기장의 유적지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