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스플리트, 시베니크, 트로기르, 혹은 그 인근에 가 본다면 클리스 마을에 위치한 굉장한 방어시설인 클리스 요새에 방문해 볼 만합니다.
클리스 요새는 크로아티아의 가장 뛰어난 방어시설 중 하나이며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클리스 요새의 역사
오늘날의 요새 지역에는 기원전 2세기에 일리리아인들에 의해 세워진 진지가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크로아티아인들이 이 지역에 도착하고 초기 크로아티아 국가들이 형성된 후, 9세기 무렵 클리스는 크로아티아의 공작이 거주하던 곳이었습니다. 이는 9세기의 트르피미르 공작에 의해 건립된 초기 크로아티아 국가의 고문서에 의해 증명되었습니다.
그 시기는 클리스 요새의 격동하는 역사의 시작이었는데, 그곳의 훌륭한 전략적 입지 때문에 모든 정복자들이 원하던 곳이었죠.
초기 중세시대는 고트족과 아바르인들을 주로 하는 이방인들의 침입이 두드러지는데, 그들 역시 요새를 정복하기 위해 수시로 노력했습니다.
중세시대 후반 요새는 베네치아가 점령하게 되는데, 당시 베네치아는 달마티의 많은 도시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15세기에 유럽의 일부 지역은 오스만 왕조의 지배를 받는데, 이 왕조 역시 때때로 클리스를 정복하려 했죠. 그들은 한 세기 후에 결국 성공하게 되는데, 1537년에 오스만 왕조는 클리스 요새를 손아귀에 넣었고, 클리스 요새의 수령이었던 페타르 크루지치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100년 후 요새는 다시 당시 달마티아를 지배하던 베네치아로 넘어갔습니다.
19세기에 요새는 잠시 나폴레옹의 지배하에 있었고, 합스부르크(오스트리아) 군주정이 후에 장악했습다. 오스트리아는 20세기까지 요새를 지배했습니다.
요새를 둘러보면 군사적인 필요에 의해 요새가 여러 차례 개축되고 보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터키인, 베네치아인, 프랑스인, 오스트리아인들이 그들의 필요에 맞게 요새를 사용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클리스 요새는 중세와 근대의 살아 있는 작은 역사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죠.
요새의 마지막 역사 무대는 왕좌의 게임 시리즈에 의해 점령되었습니다. 클리스 요새는 극중 미린이라는 도시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클리스 요새의 위치
클리스 요새는 스플리트에서 15킬로미터 떨어진 A1 고속도로의 입구 근처에 위치해 있습니다. 자동차로 가기 쉽고, 요새 주위에는 무료 주차장이 있습니다.
스플리트에서 클리스까지는 몇 개의 버스 노선도 있는데, 여름에는 매일 여러 번 운행됩니다. 운행일정은 스플리트 버스 정류장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또한 프로메트 스플리트에서 운영하는 스플리트-클리스 지역 버스 노선들도 있습니다.
클리스 요새 입장료
클리스 요새의 입장료는 성인 한 명당 40쿠나, 아동은 20쿠나입니다. 클리스 요새 입장권은 민속공원 스텔라 크로아티카와 요새 아래에 위치한 해설 센터에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클리스 요새의 볼 거리와 관광
요새에 들어가면 방문객들의 흥미를 끌 만한 곳들에 대한 지도와 정보가 담긴 책자를 받게 됩니다.
클리스 요새는 역사를 거치면서 여러 개의 출입구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오직 필요할 때만 사용되다가 다시 벽이 세워진 흥미로운비밀 입구도 있습니다.
오프라 진지는 14세기에 건축되었습니다. 이는 요새의 서쪽 부분의 가장 중요한 방어 시설이 되었습니다.
과거 무기를 보관하던 창고는 오늘날 무기를 전시하는 박물관 역할을 하는데, 역사를 거치며 요새에서 사용된 무기를 볼 수 있습니다.
과거 크로아티아 공작의 주거 장소는 고고학적 비문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9세기 트르피미르의 비문이 있습니다.
성 비드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되었습니다.
해설 센터와 스텔라 크로아티카
요새를 방문하고 난 후, 입장권에 포함된 두 개의 장소를 추가로 방문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주차장에서 몇 미터 떨어진, 카페 근처에 있는 해설 센터입니다. 해설 센터에서는 요새 역사의 중요한 점들을 보여주는 10분짜리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스텔라 크로아티카는 요새에서 3킬로미터 떨어진 민속공원입니다. 스텔라 크로아티카에서는 달마티아 내륙의 전통을 보고, 느끼고, 체험해 볼 수 있습니다.